아침에 일어나 보니 여전히 눈은 내리고 있었다.. 창 밖을 내다 보니.. 차 문 높이까지 쌓인 눈 때문에 차문을 열기까지 눈을 파내느라 실갱이를 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확연히 줄은 거리의 통행량... 오늘같은 날.. 눈을 핑계로 하루 쉴까.. 했지만.. 일이 없어도 그래도 나가서 앉아 있는게 도리다 싶어 출근 준비를 했다.. 도로 위에 눈이 녹아 질퍽거리기는 했지만.. 오늘은 운동삼아 걸어서 출근하기로 하고 완전무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어디든 발목 이상으로 쌓인 눈 때문에.. 앞서 간 이의 발자욱을 쫓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채 두 뼘 되지 않을 가느다란 골을 따라 걷다가 마주오는 사람이 있으며 옆으로 벗어나 피해주기도 하고... 어느덧 한적한 공원길에 접어들어 그나마 폭이 더 줄어들은 가느다른 골을 따라 걷는데.. 저 만치 마주오던 이가 옆으로 비켜 서서 내가 지나기를 기다려 주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자.. 나를 보며 인자한 웃음을 띄우며 열댓살 형님뻘 되는 분이 말씀을 건네 오셨다 "조심하세요~ 길이 많이 미끄러워요"... "아..네.. 감사합니다~" 서로 웃으며 목례를 나누고 지나쳐 걷는데.. 별 얘긴 아니더라도 한 마디 라도 염려섞인 친절한 말을 건네온 이가 내심 고마웠다. 무심코 걸음을 멈추고 친절한 형님을 잠깐 뒤돌아 보았는데.. 그 순간 2~3보 걸음 앞 나무 위에서 한 뭉텅이 눈덩어리가 퍽..소리를 내며 바닥에서 부셔졌다.. '이런.. 이렇든 저렇든.. 저 형님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뒤집어 쓸 뻔했네' 그렇게 또 마음 속으로 고맙습니다.. 생각을 하고 걷는 길.. 바닥에 봉곳한 습설이 밟으면 무너져 내리는 통에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몇 번을 넘어질 뻔..하기도 하였다.. 평소 차로는 10여분 남짓이면 닿을 거리.. 걸어서는 1시간 거리가... 눈길을 걸어서인지 1시간 반이나 걸려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간 중간 몇 번인가 나무에서 떨어져 내리는 크고 작은 눈덩이 뭉치를 맞기도 했고... 무념무상 중 걷다가 깜짝 놀라기도 하고...
오늘 오기로 했던 복합기 A/S 기사에겐 다시 문자를 보냈다.. 아무래도 오늘도 눈 때문에 위험할 것 같으니 내일 오시라고... 답장이 왔다.. 감격의 표시와 함께.. 배려해 줘서 고맙다고.... 고맙긴 머.. 이런 날엔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는게 서로 서로 좋은거지... 당장에 어찌할 만큼 급한 것도 아닌데 이리로 오다가 혹여 사고라도 나면 내 맘도 편치 않을테니...
그나저나 네이버를 이리 저리 뒤져봐도.. 11월 첫 눈에 40cm가 넘는 .. 이리 많은 눈이 오기는 역대로 드물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번 폭설은 서울 및 경기도권 일대에 집중되었고... 내 살아오면서 이런 눈을 만나본게.. 아마도 1994년 대구에서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그 때도 대구에는 무릎높이 만큼 눈이 내렸었고... 그 때도 사무실까지 걸어서 출근을 했었다..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선배들이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오늘은 나오지 말라 하더라는 말에 나도 전화를 했었는데.. 그때 과장이 그랬다.. "그래~ 조심하고 천천히 걸어서 와~"... ㅡ,.ㅡ;;; 닝기리.... 조또... 9시 조금 안되어 출발을 해서 사무실에 도착하니 12시가 가까운 시각이었었지...
그러고 보니 오늘이 .. 딱 30년 만의 데자뷰... 같은 날이었네... 차이점이 있다면 오늘은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 그래도 자발적으로 걸어 나왔다는 것... 그 때는 몇 월이었나??.. 모르겠다.. 시간 상으로 보니.. 그 때 기숙사에서 사무실까지의 거리는 10여 키로 남짓이었던 것 같다..
아침에 걸어 오면서 보니.. 크고 높은 나무에 눈이 쌓여 휘영청 늘어져 있는 모습이.. 흡사.. 사진 속에서 보던 노르웨이나 핀란드 어느 숲속 나무처럼.. 딱 그랬다.. 나무 뒤로 높이 솟은 아파트 건물 만 없으면.. 정말.. 마치 어느 깊은 침엽수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 느껴질.. 그런 모습이더만... 멋있었다.. 걷다 보니 '멋은 개뿔...' 이내 비틀대느라... 바빴지만....
어쨌거나.. 눈이 많이 와서 불편한건 불편한거고.. 걷는 와중.. 이리 저리 풍경을 보며.. 다시 한번 드는 생각이 있었다... 언젠가는... 내 꼭... 겨울이면.. 하얀 눈이 내리고 나면.. 이렇듯 눈쌓인 설산을 구경할 수 있는 곳에서 살아야겠다는... 온 산에 나무마다 하얗게 핀 눈꽃이 흐드러진 광경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살아보겠다는... 겨울날 깊은 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고라니와 멧돼지가 마당까지 내려와 행패(?) 부리는 .. 그런 곳에서 살아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뭐.. 근데.. 그게... 일전에도 그리 말해 보았으나.. 가족 중 누구도 안따라오겠다 하였으니.. 아마도 간다면 나 혼자 가야하지... 싶다... 그 동안은 혼자라도 갈까 말까 싶었다면.. 오늘은 혼자라도 가야겠다... 는 쪽으로 생각의 추가 훨씬 더 많이 기울어졌다..
근데 이상하네.. 평소의 풍경은 바다 풍경을 더 좋아라 하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생활 속 풍경은 산속의 풍경을 찾는다니... 이건 또 어떤 심리에서 비롯된 일 일까.. 알 수가 없네... ㅡ,.ㅡ;;
오잉?.. 내일 오시라 했던 복합기 기사님이.. 오셨다..@.@ .. 헐.. 오늘 내가 안나왔으면 큰일 날뻔했네... 사실 겉모습은 무표정하게 있으면 왠만한 양아치들도 쉽게 시비를 걸지 못할 만큼... 조폭(?) 뺨치는 인상이시지만.. 그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너무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신 분...
수리를 끝내고.. 생각해 두었던 질문에는 과감하게 요금 할인으로 화답을 해 주셔서.. 이래 저래 고맙기도 했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비슷한 문의를 해오는 곳이 많다고.. 아무래도 요즘은 수월하게 사는 곳이 없는 것 같다고 하셨다... 글치.. 그건 그래... 경기가 안좋아도.. 너무 안좋아...ㅜㅜ..
기사님이 가시고... 가만히 앉아 창 밖을 보니... 녹은 눈에 물방울로 무리진 일단의 무리가.. 유리창을 따라 경주하듯 쪼르르 달리는 모습이... 왠지 귀엽게 보인다... 눈 밭에 발자국 남듯이.. 유리창에 점선처럼 남은 물방울의 궤적들... 어느 다소곳한 여인네의 정갈한 바느질 자국처럼 일정하게 남은 모습이.. 마치 그림 같다.. 또 하나 물방울 또르르.. 구르면.. 이내 또 달라지는 그림.. 그렇게 움직이는 그림을 보며... 이 고요한 사색을 즐기고 있다.. 어느날인가에는 오늘의 이 순간 마저.. 그리워 질 날이 있을지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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