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오고 가는 정...

작성자
vi*****
작성일
2024-10-24 10:26
조회
1320

어제는 퇴근 길에 마트에 들러 얼갈이 두 단을 샀다.. 문득 폰에서 보았던 얼갈이김치가 먹고 싶어서... 

오자마자 얼갈이를 씻고.. 흙이 많아 여러차례 씻어야만 했다.. 근데... 갖은 양념들을 썰고 갈고..  얼갈이를 소금에 절이고 하는..  이런 과정들 속에서..  나는 즐겁고 재밌음을 느꼈다..  중간에 얼핏 생각하니.. 혹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트럭 운전이나.. 요식업.. 둘 중에 하나에 종사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가? 이것도 업이 아닌 취미가 되다 보니 즐거운걸까?..  

어쨌거나.. 대폭 줄어든 남성호르몬의 영향 탓(?)인지.. 즐거운 마음으로 싱싱한 얼갈이 김치를 버무리고 통에 담으니 2시간여 쯤.. 지나 있었다..  깨끗이 뒷정리까지 마치고 나니 9시..  덕분에 평소 6시면 저녁식사시간이었는데.. 많이 늦어 버렸다.. 

음.. 위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엊그제 받았던 누룽지를 끓여 먹었다..

먹다보니 알겠더라구.. 누룽지를 먹으면 왜 살이 찌는지...   그 구수함이 좋아 자꾸 퍼먹다 보니..   내가 누룽지를 눌러 만들어본 경험에 의하면 지금 먹은 이 정도의 누룽지를 만들기 위해선 못해도 밥공기로 2공기 이상의 분량이 필요한 법....

누룽지가 흰밥 보다 영양가가 많다는 것과는 별개로.. 왜 살이 찐다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밥 보다 많이 먹힌다는 사실을...  ㅡ,.ㅡ;;;

누룽지가 어떻드냐는 전화를 주신 사장님께.. 정말 맛있다고..  먹다보니 누룽지 먹으면 살찐다는 소리가 왜 있는지 알겠더라고.. 많이 먹히는 거라고 말씀을 드리니.. 특유의 호쾌한 여장부 웃음으로 한참을 웃으시더니..  이번에는 또 갑자기..

"홍삼 액기스 .. 좋아해?" 하신다..    순간.. 발동된 촉이 있어.. 뭔가 꺼림직 하지만..  이걸 싫어한다고 해야하나.. 사실대로 말씀드려야 하나..  쭈뼛대고 있는데...

"내가 금산 사람이잖아~ 우리 언니가 지금도 금산에서 매번 홍삼액기스를 보내줘.. 내 그것도 보내줄테니까 한번 먹어봐~..   평소에 이런거 조금씩이라도 먹어서 건강관리도 해야 돼 이제는~"

헉...   "아녜요~ 사장님.. 뭘 자꾸 얻어 먹어요.. 제가 사먹어야죠~ 됐어요 보내지 마세요 진짜...."

"아냐 아냐~ 나 이거 죄다 남주고 그래~ 나는 홍삼을 안먹거든...  괜찮아 그냥 보내줄테니까 한번 먹어봐~  다들 진짜 좋다고 그러긴 하더라구..."

........   상대에게 그냥.. 퍼주고 싶은 마음...  흔히들 부모님의 마음이라고 그러는데..  사실.. 내 부모님도 내게 이리 퍼주시지는 않는데...  ㅡ,.ㅡ;;;;  

당황하고.. 죄송스럽고...    괜히 누룽지가 맛있다고 말씀드렸나.... 근데 그렇게 말씀 안드릴 수도 없었고...   

아...  이 사장님하고는 통화를 자주하면 안되겠구나... 매번 유쾌하고 재미있는 통화지만... 줄곧 이렇게.. 통화 말미 쯤엔 뭔가를 보내주겠다는 말씀을 듣다 보니... 이거 참.. 몸둘 바를 모르겠다...    난 정말 의식적으로라도 남에게 무언가를 그저 받는거에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하는 사람이기도 한데....   

생각해 보면.. 반대로..  내게 바라는거 없이 이리 잘해주는 사람을 대하는 처세도.. 나는 사실 쉽지가 않다..  바라는게 없으시니 당연.. 내게 기대하는 바도 없으심을 잘 알고는 있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 기대하는 바가 없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는 .. 그런 격언 아닌 격언을 믿고 있는데...   이와 같은 경우.. 혹시라도 훗날에.. 내가 저 분께 나도 모르는 그 어떤 실망감을 드리게 되는 일이 발생했을 때...  그간 본인의 정성에 비추어 더 크게 실망하시게 되시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사실은 있다... 

그래서..  살다 보니..  누군가에게 그저 맥락없이 베푸는 일도...  맥락없이 도움받는 일도..  가급적 피하면서 사는게 최선이다.. 생각하고 있는데...   

사는게 참...  생각이 없어도.. 많아도.. 피곤하긴 마찬가지이다...  분명 감사하고 좋은 일 임에도..  산다는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건.. 그저 감사합니다..하고 매번 넙죽 넙죽 받아 먹기만 할 수는 없다는 사실...   저 분이 내게 주신게 그 분의 정.. 이라면..  나도 그 만큼은 아닐지언정.. 상응하는 보답을 정으로써 건네야 하겠다는 ..  의무감(?)을 가슴에 새겼다... 

이 아침에....   그리고..  이런 일에 돈 쓰는 것 만큼 기분좋은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음...  그러고 보니 생각난게..  예전에 누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너는..  하나를 받으면 꼭 하나를 되돌려 줘야 하는 성격인 것 같다? ...  근데 그런 사람들이 꼭 그렇던데...  좋은거 하나를 받으면 좋은거 하나를 반드시 되돌려 주지만 나쁜걸 받았을 때도 나쁜거 하나를 꼭 되돌려 주던데.. 넌 안그러니?"

"에이..  난 그렇지는 않아요 형님..   상대가 밥 한번 사면 내가 한번 사고 .. 뭐 그런건 있지만..  누가 나한테 해꼬지 했다고 해서 똑같이 해꼬지 하고.. 그렇지는 않아요.. 그냥.. 상대를 안했으면 안했지..." ..

"그래..  그게 맞지~..  그건 좋은면인거 같다"

"네 형님"

....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자.. 한 번을 얻어 먹으면 한 번을 사고...  한 번을 당하면 상대하지 말고...    내가 아무리 옹졸하다지만... ..  적어도 그렇게는 살아가자...  꾸나~

오고 가는 정은.. 챙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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