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시험..
막내 녀석.. 역사 시험이 있다고 해서 시험 범위 내 단답형 문제를 내보기로 했다.. 내가 묻고 녀석은 답하고... 암기 과목은 이런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 때문에.. (나중에 알고보니.. 결과적으로는 옳지 않은 접근 방식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후술하기로 하고...)
문제를 내다가 보니 눈에 익숙한 단어들이 몇 몇 눈에 들어왔다.. 1943년 카이로 회담.. 1945년 얄타회담.. 1945년 포츠담 회담...
일본의 패색이 짙어가던 1943년 이집트 카이로에 모인 미,영,중 3국은 전후 국제정세를 고려하여 여러가지 협상을 하였고 그 중에 하나가..
제2차세계대전 중 일본이 점령한 점령지 국가의 완전한 독립 약속이었다.. 즉, 우리나라의 독립도 약속이 되었다..
1945.2월 이번에는 내전으로 정신없는 중국을 제외하고.. 미국,영국,소련이 모여 얄타회담을 하였고 그 자리에서 소련은 대일본전 참전을 공언
하는 한편.. 독일 분할 점령 계획이 수립되었다..
항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일본을 상대로 최후 통첩 격으로 1945.7월 포츠담에 이번에도 미국, 영국, 소련 3국이 모여 일본의 완전한 항복을
요구하였다..
그래도 일본의 반응이 없자 1945.8.6일 미국은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폭 투하.. 1945.8.8일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잽싸게 사할린 남부와
쿠릴열도를 점령하였다.. 이 기간.. 거의 전쟁의 끝 무렵.. 거저 탑승하다시피 한 소련은 거의 머 남의 집 잔칫상에 숟가락만 하나 거저 얹은
수준.. 인데 승전국 지위는 확보한.. 진짜 얍삽한 수준... ㅡ,.ㅡ;;
1945.8.9일 일본 나가사끼에 두 번째 원폭 투하...
1945.8.15. 일본 천황의 연합군에의 무조건 항복 발표... 이로써 1910년 한일합방 후 36년 여에 걸친 일제강점기로부터 우리나라는 완전히
독립..
원폭 투하..But not Crime?
뭐 대충.. 이런 연대기인데.. 여기에서 문득, 의문이 생겼다.. 총알이 빗발치는 최전선도 아니고 아무리 적군이라지만 .. 대다수 민간인이 거주하고
있는 민간인 거주지역에 .. 폭탄을.. 그것도 인류최초이자 최대의 가공할 위력을 가진 원자폭탄을 투하..하는게 맞아? 라는.... 그것도 두 방을??..
이렇든 저렇든.. 수많은 민간인을 어쩌면 무고했을지도 모를 사람들을 원폭 2방으로 수십만명 살상을 했는데.. 전쟁범죄가 아니라고??
물론 그로인해 일본은 무조건적인 항복을 하게 되고 ..또 그로인해 우리나라의 완전한 자유독립이 상당기간 앞당겨지는.. 결과를 초래했음은
물론이긴 한데... 그 원폭 두방으로 인해 30만여 명이 민간인이 즉사하였고.. 수백만명의 원폭피해자들이 생성되었다...
알아보니.. 그 당시 국제 협약 상 상대국 포로의 살상 금지 외 민간인 보호 등의 선언적 규정은 존재하고 있었는데... 재래식 무기가 아닌 원자
폭탄 같은 인류가 접해보지 않았던 무기에 대한 제한 규정은 딱히 명문 상 없었다 한다..
아무튼 이로 인해.. 미국은 종전을 앞당기기 위한.. 그리고 일본 상륙에 따른 연합군 예상 사망자수 50만에서 100만명.. 일본내 민간인 1천만명에
이르는 피해를 막기위한 불가피한 조치 였음을 역설하여.. 전쟁범죄의 범위에서도 벗어나고 그랬다 하는데.... (ㅡ,.ㅡ?)
근데.. 제2차 세계대전 중 총 미군의 피해가 20만명 정도이고 그나마 태평양전쟁 중 사망자 수는 10만명 언저리 였음을 감안한다면.. 50만명
이상의 사망자 피해를 막기위해서 라는 미국의 주장은.. 어느 정도 원폭투하를 합리화 하기 위한 과장된 궤변으로도 보이기는 한다...
샌프란시스코 평화협약..
아무튼 그건 그거고 1951년.. 패전 후 정치, 경제 부흥을 위한 미국의 외교적 도움이 절실했던 일본은 일명 샌프란시스코평화협약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차관 제공 등 경제 재건을 위한 자금 도입 등을 사유로.. 원폭 투하 관련 국가, 국민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완전히 그리고 최종
적으로 종결되었음을 선포하는 문서에 서명하게 된다..
이후.. 미국은 일본의 원폭 피해 사망자와 후유증 피해자 들에 대한 보상은 커녕 일체의 사과 또한 일언 반구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일본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일본내 민간단체의 꾸준한 손배 요구 및 소송 진행 등이 있었지만.. 미국 내 법원은 샌프란시스코평화협약으로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소되었음을 근거로.. 모두 다 기각 하였고.... 그것이 곧.. 원폭피해 관련.. 모든 것의 종결이자 끝이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다시 우리나라로 시각을 돌려.. 1962년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경제 부흥이 시급한 한편.. 국제 원조나 자력갱생은 요원해 보이는 정치적
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이 때 일본군 복무 경력도 있는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에 친화 및 유화적 제스춰를 통해.. 지난 일제 강점기의
묵은 감정을 해소하고자 했고.. 이에 일본이 응한 것이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이었다.. 이 때 일본은 샌프란시스코평화협약의 기억을 되살려
비슷하게 적용을 하였다.. 당시 3억 달러의 유상원조.. 2억달러의 무상원조와 함께.. 국가간 청구권의 완전한..그리고 최종적인 해결이 되었음을
명기한 것이었다..
여기서 일본측 입장을 잠시 헤아려 본다면.. 우리도 미국으로부터 돈 끌어다 쓰는 대신에 원폭피해에 대한 모든 청구권을 포기하였다.. 아울러
이번에 한국정부에 일제강점기 피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지면서 모든 배상청구권의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해결임을 명기하였다...
이것이 일본측의 판단인 것이었다...
그 후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결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평화협약에는 국가와 국민의 배상청구권 포기가 명시되어 있지만..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는 국민 개개인의 배상청구권.. 내지는 나아가 일본전범기업에 대한 배상청구권까지 포기함을 명시한 규정은 안보인다는 사유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는 별개로 국민 개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유효함을 판시.. 하였다... 물론 이에 일본 정부는 강력 반발하고 있고....
배상과 사과..
내가 친일파는 아니지만 일본의 시각으로 보면 자신들은 두 방의 처참한 원폭피해를 입고도 협약에 의해 배상청구권을 깨끗이 포기했음에 비해
같은 과정을 거쳐 체결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불구하고..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상존하고 있다는 해석에 동의하기는 힘들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또한 내가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1965년 협정 당시.. 협정의 취지와 상호 이해가 그러했다면.. 이제와서 문구 하나 없음을 꼬투리 잡아
또 다시 배상을 요구하는 건.. 조금.. 상식적으로도 이해하기 힘든.. 그 무엇이 있기는 있다.. 이런 말하면.. 너 역적이지?.. 하겠지만.. ㅡ,.ㅡ;;
반대로 생각하면... 1965년 협정은 국가간 배상문제 만 해소한거다?.. 국민에 대한 배상 문제는 남아있다?.. 이렇게 해석해야 된다는 얘기인데...
글쎄... 국가의 피해와 국민의 피해를 나눠서 판단할 수 있을까?.. 설령.. 할 수는 있다한들.. 일제강점기의 피해라 함은.. 대부분 그 긴세월
나라 없는 설움 속에서 일본의 폭정과 압제를 견뎌낸 민초들의 피해가 대부분이지 않을까?.. 근데 당시로서도 작지 않은 5억달러의 유무상
차관을 들여오면서 이건 국가의 것이고.. 개인의 것은.. 모르겠다??... 음.. 난 이 지점에서.. 당시 협정을 주도한 국내 정권의 실체들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기 어렵다... 어찌보면.. 피해자에게 갔어야 할 보험금을 대리수령하면서 갈취한 것과 머가 달라.. 라는 생각까지 들고.. ㅡ,.ㅡ
이래 저래 생각해 보아도.. 물리적 손배 요구는 1965년 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일소되었다고 보는게 맞다는게.. 내 생각이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과거 과오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는 몇 번이고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사과는 사과를 받을 사람이 되었다..고 할 때까지
하는게 맞다고 생각들기에... 설령 일본의 주 정치세력이 책임지기에는 일일이 다 관장, 관리할 수 없었던.. 미단부에서 벌어진 일이라 해도..
그것에 대한 최후 책임의 통감은 최종 권력권자가 하는게 맞다고 본다..
국사와 역사...
그건 그렇고.. 요즘의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역사..이더라.. 우리 때에는 국사..였는데.. 역사냐 국사냐.. 여기에는 작은 차이가 있다..
국사는 민족주의 관점에서 한국사에 벌어진 연대기별 사건 서술에 중점을 둔다.. 역사는 거기에 세계사와의 연관성을 보태고.. 단순 역사적
사건의 나열이 아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배경.. 국제조류와 우리의 대응.. 그리고 변화에 대해 종합적으로 사고하게 만든다..
따라서 단순하게 놓고 보면 우리때 국사는 암기 과목이었다 한다면 요즘의 아이들이 배우는 역사는 비판적사고와 종합적 판단을 요구하는
보다 더 고차원적인 학문의 영역인 셈... 그니까 결과적으로 처음에 언급했듯이.. 아이의 역사문제를 단답형으로 질문을 했던 내 방식은..
요즘의 교과 과정 취지에 비추어 한참 어긋난 방법이었던 셈... 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게 하고.. 보다 더 깊은 사고의 통찰을 요구했어야
마땅했는데... 어제의 나는.. 이러한 변화를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다... ㅡ,.ㅡ
아마도... 오늘 시험을 마치고 나를 마주하면 녀석은 ... "에이.. 아빠가 물어본거 하나도 안나왔어요~~" 이러지 않을까.. 싶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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