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는대로

보리밭

작성자
vi*****
작성일
2025-06-02 14:01
조회
289

라디오에서 방금 흘러나온 가곡...   "보리이~이이~밭♪ 사이잇~길로  걸어어어가면~~♬" ...  내게 아직도 기억나는 치욕스런 추억을.. 남긴 곡...

요즘에도 그러나 모르겠는데..  아마도 중학교 때이지 싶다.. 1학년 무렵..   음악선생이 할아버지 선생님이셨다..  지금으로 본다면 그야말로

그레이 로맨스..라 불리울만한.. 멋진 노신사이긴 하셨는데..   아무튼 그 때 음악시간에 종종 가창 시험이 있곤 했었다..

학기말 쯤 가창 시험의 과제로 주어진 노래가 저 노래 보리밭..이었다.. ..   한 반에 60여명 되는 아이들 앞에 나가 노래를 부른다는 무대공포가..

그 당시의 내게는 상당했었다..  아.. 지금은 막내 아들놈에게 물어보니 여전히 가창시험이 있기는 한데...  반 아이들 앞에서가 아니고 따로이 별실에

들어가 선생님 앞에서만 부른다고...  ㅡ,.ㅡ (닝기리.. 세상 좋아졌네...)

그 때.. 수업시간에 줏어들은 대로 집에가서 며칠 동안 틈나는 대로 연습을 하기야 했다만...   악보라고 해봐야 내게는 까만콩 하얀콩.. 콩나물 대가리

가득한.. 머 그렇게만 보이는데...    연습을 한들 잘될리가 있나..  더욱이 노래에 소질이 없었던 나는 부를 때마다 목소리가 잦아들고..  종내는 기어들어

가는 소리가 날 수 밖에 없었다..  

드디어 가창 시험 시간..   60여명 반 아이들 앞에서 잘 부르는 애들은 큰 소리로 우렁차게..  그리고 오~오~ 소리를 들으며 화려하게 퇴장을 하고..

나같은 음치 녀석들은 반아이들의 큭큭 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기가죽은 목소리로 기어들어가듯 노래를 부르고.. 채 끝까지 다 부르지도 못하고

황급히 퇴장을 하고.. 그랬었다..  

내 순번이 다가올수록 쿵쾅거리는 떨림을 어찌하지 못하고.. 무대에 나서기도 전에 사기가 땅바닥에 떨어진 모습으로 아이들과 선생님 앞에서서

"자~ 시작"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닝기리...   심장만 떨리면 좋으련만...   목소리도 떨리게 나와.. 마치 염소가 노래를 부르는 듯한 마디 마디 끊기는 바이브레이션...  니미.. 가곡은 

이렇게 부르면 안되는데...    나도 알지만 쪽팔림에 머리가 하얗게 되어 버린 채로..  어찌 어찌 노래를 부르고..  아, 물론 나도 앞서 불렀던 아이와

마찬가지로 끝까지 부르지도 못하고..  중간에 잘려서 황급히 퇴장을 했다..

그 때의 가창 시험 점수가..  67점 이었다...    12년 학창 시절 모든 과목을 통틀어 가장 저점을 찍은 점수...   

그 뒤로..  노래부르는데 한껏 주눅이 들은 나는 수업시간은 물론 어디가서도 노래를 부른 적이 없었다..  아.. 내가 말로만 듣던 바로 그 음치구나..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ㅡ,.ㅡ 

먼 훗날..  세상에 나타난 신문물..  노래방..이라는 신문화가 생겨나고 나서도 .. 오랫동안 그 곳을 가 본적이 없었다..    노래 뿐 아니라 음악 듣는걸

워낙에 좋아는 했지만..  음악은 듣는거지 내가 부르거나 하는건 절대 아니올시다..라는 생각이 머리에 콱~..  박혔었으니까... 


훗날 조금 대가리가 커서.. 생각이 바뀌었다..  타고나기를 노래 못하게 태어난걸 어찌하냐고..  내 잘못이.. 딱히 아니지 싶은 마음에...  그 후로는

어디선가.. 누군가 내게 노래를 시키면... 그래 머..  내가 어렵냐.. 듣는 너네들이 괴롭지..하고 마다않고 노래 한곡 뽑기도 하고 그랬었다..  

쭈뼛대기 보다는 진지하게 부를수록 더 재밌다고 잘도 뒤집어들 지더라구...  ㅡ,.ㅡ 


가만히 생각하면..  노래라는게.. 후천적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  마찬가지로 그림, 체육 등도 그러하고...  

타고나기를 노래 잘하는 애들과 경쟁을 시켜 그걸 점수로 메기는게 정당한 일이냐.. 에 대한 의구심이 한동안 있었다..   

노래 잘하는 놈은 뭐 별 노력없이도 맨날 점수가 잘 나오고..   노래 못하는 놈은..  피를 토하는 득음의 경지에...... 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리 노력해도

맨날 70점 대...  ㅡ,.ㅡ   아 이거 뭔가 좀.. 불공평한거 같애.. 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었다.. 

그 때의 내 마음으로는..  키를 재서 점수를 메기면.. 키 큰 아이들은 노상 고득점을 하고 나처럼 키작은 아이들은 노상 저득점을 할 수 밖에 없는 ..

그런 구조와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는.. 일종의 커다란 벽으로 느껴졌었거든...  

아무튼 근래의 아이들은.. 학생인권이 강화된 덕분인지..  선생님과 단둘의 공간에서 가창 시험을 치른다 하니..  그건 참.. 좋아진 부분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보리이~밭~..  으로 시작하는 저 노래. '보리밭'만 흘러 나오면 그 때의 기억과 함께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는 한다..   그 때의 쪽팔림도

되살아나고... 그래서 장르 불문하고 음악과 노래라면 다 좋아라 하는 나지만.. 저 노래 만큼은 듣는 동안... 전혀 유쾌하지가 않다..   

그 때의 쓰디 쓴 기억 때문인지..  지금 따라 불러도 저 노래는 묘하게 어렵다...    마치 PTSD 증후군이 발동하는 것처럼..  저 노래를 따라 흥얼거릴라

치면..  노래도 아니고.. 그렇다고 염불도 아닌.. 머 그런 이상한 주절거림이 되어 버리고는 한다...  

아마도 가곡 보리밭은 내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딱 꼬집어 제일 싫어하는 노래이지 싶다..  ㅡ,.ㅡ;;   듣기도 싫고.. 부르기는 더 싫고...   

그토록 서정적인 운율과 가사의 아름다운 노래이지만.. 들을 때마다 경끼 나는 현상...  

그 후로 숱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나는..  보리밭을 들을 때마다 발작하고 있다...   덕분에 덩달아 잊히지 않는 할아버지 음악선생님...  

내 앞에서 먼저 불렀던 아이...  선생님이 왜 그렇게 부르냐고.. 이렇게 저렇게.. 어쩌고 저쩌고 잔소리가 늘어질 무렵.. " 아.. 그렇게 불렀다니까요?"

한마디 하고 퇴장 당했던 아이...   ..  화가 난 선생님이 "하.. 이 씨..  넌 50점이야~ 들어가~"  ..  선생님의 말대로 이루어졌음을 알고 얼마후

그 아이와 나는 서로 배를 잡고 웃었더랬다..    50점이 뭐냐고...  그러는 넌 67점이 점수냐고.... 

그 아이가 한마디 내게 덧붙였었다.  "야.. 근데 저 선생님 노래했을 때 ...뭐 썩 그다지 잘부르는거 같지 않던데.. 안그러냐?" 

"음.. 그러게?..  사실 나도 따라 부르면서.. 나랑 뭐가 그리 다른걸까?.. 생각하긴 했어~"   그렇게 우리는 가창 시험의 바닥을 찍은 주제들 임에도 불구

하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연세 많으신 음악선생님을..  두고 두고 씹었더랬다...    그 때는 그저 속좁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저 그렇게 서운했거덩..

... 내가 못한건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그렇게 야멸찬 점수를 주신 선생님이...   겁나 밉기만 했었거덩.... 

그후로도 오랫동안..  노래?.. 니미 안되는걸 어떡하라고...   라는 생각 밖에는 없었거덩....   ㅡ,.ㅡ 

뭐 하여튼.. 그런 감정들과는 별개로.. 오늘날에도.. 노래 잘하는 이나..  악기를 잘 다루는 이들을 보면..  나는 아직도 하염없이 부럽다...   

그리고 가끔은 지금도...   바이올린 학원을 보내달라던 내 요구를 사뿐히 무시하고 태권도장엘 보냈던..  어머니가...  쪼끔... 미워지기도 한다

이 나이 먹어서도 아직도 철이 안들어서....    보리밭을 들을 때마다.. 문득 문득 떠오르는....  단상이다...    .. 보리밭.. 아직도 내겐 졸라 어렵기만한

노래이다.. 노래가 아닌.. 외워야할 장문의 독립선언문 같은.. 그런 느낌의 노래...  내게는 ...  아직도 그렇게...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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