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입춘... 18일.. 우수.. 음력에 따른 절기 상으로는 이미 봄이 시작되었어야 하지만.. 아직도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 겨울이다...
오늘 아침 창 밖의 화창한 햇살을 보고 조금 가벼운 옷으로 바꿔입을까.. 싶어 오늘의 기온을 보니.. -7도.. 영하의 온도였다.. 오우..안되겠다.. 다시 두꺼운 패딩을 걸쳐입고 집을 나섰다.. 기온만 낮은게 아니라 바람도 불어 제법 춥다는 느낌에 자연스레 몸이 움츠러 든다...
머리속엔 '입춘이라메?'.. 하며 추운 날씨에 대한 못내 못마땅한 투덜거림으로 가득해 지는데... 마치 동장군은 '누구맘대로?' 라며 이제 봄이 오는가보다 라는 기대를 단박에 꺾어 버리는 매서운 추위로 기세가 등등한 느낌이다.. 은은한 봄은 힘을 쓰는데에도 은은한 시간이 꽤나 많이 필요한 모양이다..
오늘 뉴스에 보니.. 우리나라는 해가 갈수록 겨울이 짧아지고... 봄, 가을이 길어지고 있는 추세라는데... 2090년이 되면 겨울이 채 한달이 되지 않는.. 그런 시대가 오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흔히 알고들 있는 이상기후.. 기상이변... 전적으로 그 탓이긴 한데... 다시 생각하니.. 하얀 눈 펄펄 내리는 겨울이 채 한 달이 되지 않는 시대가 오면... 지금은 가끔 보이는 하얀 눈 덮힌 세상도 거의 보기 힘들어 지지 않을까.. 싶어.. 추운건 추운거고 일단 아쉬움이 앞선다.. 그런 시대가 되면.. 스키장... 은 진짜 여간해서는 즐기기 힘든 고급 스포츠가 되어 지금처럼 대중적인 레저로서의 지위를 상실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마도... 저 먼 북유럽 어디로들 스키 투어를 가야만 설원을 가르는 엔돌핀 돋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머..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까 싶다..
노래 가사에도 있는 '긴긴날 기나긴 밤... 어머니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를 들어라~' 하던... 겨울의 기나긴 밤은 전설 속으로만 남게 되겠지..
그러고 보니 지금도 희미하게 떠오르는 옛날 겨울 어느 밤들의 기억들... 연탄난로 아궁이 바로 위 까맣게 타버린 구들장 위에 두꺼운 솜이불을 깔고.. 덮고... 퇴근하면서 아버지께서 사들고 오신 군고구마를 손이 까맣게 껍질을 벗겨 맛있게 먹었던 기억... 지금도 가끔 오븐에 고구마를 구워 먹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그 날들에 먹었던 그 맛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겨울이면 또 다시 고구마를 굽는 습관적(?) 행동은 어쩌면 예전에 먹었던 그 뜨거운 군고구마의 기억에서 유래하는지도 모르겠다... 매번.. 아.. 군고구마 먹어야지.. 하고서는 막상 군고구마를 먹을 때에는 어? 예전의 그 맛이 아닌데? 하는...
라면... 특히 추운 겨울날 연탄불 위에 노란 양은냄비 걸치고 끓여 먹던 누런 봉투의 삼양라면은 또.. 그렇게나 맛있을 수가 없는 별미였는데...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고 있다.. 연탄가스의 메퀘한 냄새와.. 그와 어우러져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라면 냄새....
그 때는 라면이 왜 그렇게나 맛있었는지... 어쩌다 엄마가 라면을 끓여준다 할 참이면.. 동생과 나는 신나서 어쩔줄을 모르곤 하곤 했었다..
어느 날... 그 때도 겨울.. 더욱이 창 밖으로 하얀 눈이 펑펑 내리던... 라면을 끓여 준다해서 신이난 나와 동생은 방안을 뛰고 구르며 좋아라 했었다..
그러다가 끓는 물이 너무 많다고 대접에 덜어 놓은 걸.. 그렇게 뛰고 구르다 동생 녀석이 쳤고.. 엎어진 뜨거운 물은 그대로 나와 동생이 덮어 쓰고야 말았었다.. 머.. 동생이야 지금의 5백원 짜리 동전 만하게 데이고 말았지만.. 문제는 장난치면서 아래쪽에 있던 내가 대부분 덮어 쓴 것이 문제였다..
그 때 왼팔의 어깨부터.. 아래쪽 손목에 이르기까지 뜨거운 물을 덮어 썼는데... 겨울이라 내복에 두꺼운 쉐타에... 당황한 엄마가 옷을 벗겨내기도 쉽지 않았고... 그렇게 한쪽 팔에 데인 흉터가 남아.. 그 후로 오랫 동안.. 보기에 흉한 자국으로 남았었다..
국민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처럼 한쪽 팔에 크게 데인 흉터가 있는 아이는 없었으며... 혹가다 가끔.. 나보다 더 흉한 데인 상처를 갖고 있는 아이를 보기는 했었는데.... 누군가 팔이 왜 그러냐고 물어올 때 마다.. 라면에 얽힌 해프닝을 함께 얘기하면서.. 어느샌가 나는.. 커가면서 그 흉터에 대한 부끄러움을 갖게 되었었다.. 여름이면 반 팔 티를 입어야 하는데.. 그럴 즈음이면 꼭 누군가는 팔이 왜 그러느냐는 질문을 해 오고는 했었다...
아마도 .. 그래서.... 어린 마음에... 한쪽 팔의 흉터가 드러나 보이지 않는 계절을 은연 중에 더 좋아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겨울이면 그런 질문을 받을 일이 전혀 없었고....
그런데... 사람의 몸이란.. 참 희한해서.. 커가면서 데인 흉터는 옅어지고.. 작아지고.... 어느덧 20대 무렵을 지날 무렵에는 반팔 티를 입고 내어보이고 다녀도 사람들이 흉터가 있음을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희미해져 버렸다..
그리고.. 그 때로부터 또 한참이 흐른 지금... 자글자글 주름졌던 흉터는 매끈하게 사라지고... 그 옛날의 흉터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학창시절 내내 작은 핸디캡으로 내 맘에 꺼림직했던.. 스스로의 흉터는... 이제는 아물어... 그랬던가? 싶을 정도로.. 기억에서도 지워지고 있다...
긴 세월 끝에.. 흉터는 아물고 지워지고.. 왼팔과 오른팔의 차이를 모를 만큼... 오히려 이제는 내 왼팔을 들여다보며 그 때는 여기에서 여기까지 이렇게 흉터가 있었는데... 하며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흉터를 머리 속으로만 그려 보기도 한다...
여름이면 짧은 티를 입고 눈에 거슬렸던 흉터가.. 겨울이면 두꺼운 긴팔 스웨터와 그 보다 더 두꺼운 솜뭉치 파카 속에서... 흉터가 옅어지고 매끈하게 펴지고야 마는 머..그런.. 마법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도 매년 긴긴밤.. 겨울이면....
두껍게 팔을 가리고... 눈에 띄지 않는 긴 시간의 무관심... 혹은 망각의 시간 속에서... 어느덧 흉터는 제 스스로 아물고 새 살을 돋아 내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건... 그런 마법의 시간은 온전히 내어 보이는 여름이 아닌.... 길게 묻어두고 잊고 지낸 겨울이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가끔... 겨울 긴 밤이면 나는 순간 순간 나의 왼팔을 살펴보게 된다.. 신기한 것도 신기한거지만... 이제는 난방 기술이 좋아져 겨울에도 긴 팔을 입지 않는 실내에서 .. 그 옛날 지나간 마법의 시간들을 회상해 보면서...
뜬금없이.. 큰아이에게 물었다.. "여기 봐봐~"
"뭐요?"
"여기 왼팔~"
"네? 근데 뭐요?"
"뭐가 보여?"
".... ㅡ,.ㅡ?.. 왜여? 아빠 팔이 뭐라고 그래요??" ... 이제 그 흉터는 내 맘속에서만 간직되어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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